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시

살아 있다 난

 살아 있다 난, 이윤택

살아 있다, 난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살아 있다, 공복의 담배를 깊숙이 들이마시면서
살아 있다, 난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이란 시간이 내게 할애해 줄 좋은 일을 생각한다
그래, 살아 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산책을 나간다, 긴 장마 사이 언뜻 비치는 한평 반 푸름을 위안 삼고
아파트 옆 개천 위로 둥둥 떠 밀려가는 저 찌꺼기들까지
아름답게 느끼려 한다
창을 열고 젖은 이불을 널어 말리는 사람들
모두 용케 살아 있다, 유리창을 닦고 전구를 갈아 끼우면서
이런 식으로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매일 조금씩 불투명해지는 창일지라도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들
살아 있다는 것이 즐거운 건지 쓸쓸한 건지
한때의 반짝임인지
어느 순간 맥없이 부서지는 오르간인지
잘 모른다, 알고 보면 가혹한 시간, 그러나
이 가혹함을 견디면서
살아 있다, 난

- 이윤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