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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시

어늘 날 갑자기 - 박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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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박이화


꼬리는 길면 잡히고

그림자는 길면 밟힌다?


살아오면서

나를 불안케 했던 것도

이렇듯 늘상 뒤에 있었던 걸까?

언제부턴가 나는 항시 방패처럼

단단하고도 흐트러짐 없이 뒷머리를 바짝 올려붙인다


본시 뒤통수는 가장 믿었던 이에게 맞는 법

때론 꼬리처럼 또 때론 그림자처럼 묵묵히 뒤따르던 이에게 

깨져도 오지게 깨지는 법


그러고 보니

길고 짧음은 옆으로 나란하고

슬픔과 기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토록 두려울 거 같던 죽음조차도

어찌 보면 삶과는 안팎의 한 몸


그런데

사랑만이 줄곧 이별을 앞서고 있었구나

어딜 가나 이별이 그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구나


그렇다면 어느 날 갑자기

폭풍 치던 그 어느 날 갑자기

가차 없이 내 뒤통수를 벼락치듯 번쩍! 치고 달아났던 건

너였니? 처음부터 캄캄한 이별 뒤에 숨어 있던

아, 바로 너였니?